
맞벌이 육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아이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시간
국내 맞벌이 가구 비율이 48%를 넘어섰습니다(출처: 통계청).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정이 부부 모두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임신 이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피곤함을 이유로 아이를 밀어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밥을 챙기고 씻기는 일은 해도, 정작 아이가 원하는 건 제 눈빛과 반응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맞벌이 가정 아이의 정서 발달, 실제로 다를까
맞벌이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독립성이 높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준비물을 깜빡했을 때 부모에게 전화하기보다 친구에게 빌리거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정서적 교감이 충분하지 않으면 감정을 쌓아두는 습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부모가 늦게 퇴근하거나 피곤해 보이면 아이는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여기서 ‘민감한 양육(Sensitive Parenting)’이 중요해집니다. 민감한 양육이란 아이가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부모가 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반응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엄마, 저 지금 기분 나빠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만으로 부모가 먼저 알아채는 능력입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 얼굴을 먼저 봅니다. “엄마 왔어!” 하고 반갑게 맞으면 별일 없는 거고, 시선을 피하거나 평소와 다르면 무언가 있었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비언어적 단서를 읽어내는 것이 민감한 양육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피곤하면 이 민감성이 떨어지고, 나중에야 아이가 폭력을 당했거나 힘든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때가 가장 가슴 아픕니다.
정서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태어나서 36개월까지입니다(출처: 한국아동발달학회). 이 시기에 형성된 애착(Attachment)은 평생 관계 맺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애착이란 아이가 주양육자와 맺는 정서적 유대감으로, 안정 애착, 불안정 애착, 회피 애착, 양가 애착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엄마가 차갑고 거부적이면 아이는 회피형 애착을 형성해 엄마가 와도 못 본 척하고, 엄마가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우면 양가형 애착을 형성해 다가갔다 나왔다를 반복합니다.
꼭 친엄마가 돌봐야 하는 건 아닙니다. 좋은 양육자가 일관되게 있으면 됩니다. 다만 36개월까지는 100% 물리적·정서적 보살핌이 필요하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는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정서 문제만 감지해주면 충분합니다. 자기 관리 능력이 생기는 시기가 만 10세 전후이기 때문입니다.
애착 형성과 학원 뺑뺑이의 관계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는 어차피 돌보지 못하는 시간이라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합니다. 안전하기만 하면 안 되고,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학원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듭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일주일 일정표를 보면 방과 후부터 저녁까지 학원이 연속으로 들어차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학습 관리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정서적 교감은 놓치게 됩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숙제했니? 학습지는?”입니다. 부모하고 자식 간에 해야 할 얘기는 거의 없고, 엄마는 관리자가 되어버립니다. 초등학생인데도 “이런 거 엄마랑 얘기 안 해봤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저는 공부방을 추천하는 편인데 인기가 없습니다. 사교육에 대한 열망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는 건 편안하고 책을 읽거나 쉴 시간을 확보해주는 의미에서는 좋지만, 비교와 경쟁이 부추겨지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집에서 쉬는 것조차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학원을 많이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학습에만 에너지를 쏟아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이거 몇 개 틀렸나? 왜 이렇게 학습지 많이 풀렸어?” 같은 말을 매일 하는 건 아이에게 출근하듯 스트레스를 주는 일입니다. 학교 갔다 오고 추가로 또 한 군데를 더 가는 거라, 아이도 힘들고 관리하는 부모도 힘듭니다. 나는 회사에서 야근 싫어하면서 왜 아이한테는 엔잡, 투잡을 다 시키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조부모 양육과 공개수업에서 느낀 미안함
요즘은 조부모가 은퇴를 못 하고 손주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부모에게 주 양육을 받는 아이는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바쁜 부모 두 사람의 사랑에 조부모 두 분의 사랑이 더해지니 정서적으로 충만해 보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지시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이걸 하면 칭찬하는데 누구는 혼내니, 아이는 상황마다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헷갈립니다. 여기서 ‘일관성 있는 양육(Consistent Parenting)’이 중요합니다. 일관성 있는 양육이란 여러 양육자가 있어도 아이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와 규칙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부모가 부모보다 목소리가 세면 부모는 고모 같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또 조부모가 거의 주 양육자처럼 키우면 이분들이 건강이 쇠하거나 돌아가실 때 아이는 상실을 빨리 경험하게 됩니다. 제일 좋은 건 부모가 “이것만 도와주세요” 하는 부분만 딱 도와주시는 건데, 조부모님들은 오히려 못 해봤던 걸 하고 싶어 하셔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맞벌이 부모들은 기본값 자체가 미안하고 죄송한 상태입니다. 공개수업에 못 가면 편지 같은 글을 써서 “녹색 어머니 지원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보냅니다. 실제로 공개수업에 두 명 어머님만 못 오셨는데, 그 아이가 수업 내내 뒤를 돌아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켜본 어머님들도 마음 아파하셨고, 나중에 소식 들은 어머님은 마음이 찢어지셨죠.
저는 못 갈 때마다 아이를 붙들고 “엄마가 이래서 못 가는데 네가 진짜 속상할 거다. 저녁에 선물 사 갈게” 하고 구구절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저학년 때는 엄마가 안 와서 속상해하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오히려 오면 부끄러워합니다. “와, 짜증나. 엄마 왔어” 이런 반응도 나옵니다. 그래서 저학년 때는 신경 써야 하고, 고학년 넘어가면 아이들도 일하는 엄마를 고마워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맞벌이 부모가 완벽할 순 없습니다. 다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알아봐 주는 엄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학원 스케줄보다 중요한 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보고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어주는 시간입니다. 저 역시 피곤함을 이유로 아이를 밀어낸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민감하게, 조금 더 일관성 있게 아이를 바라보려 합니다. 부모가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순 없어도,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 그게 맞벌이 육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