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까지 보듬는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 부모의 개입과 아이의 독립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의 생활비를 계속 대주고, 심지어 빚까지 갚아주며 끝없이 보듬는 관계가 사랑일까요? 조선미 교수는 이러한 관계가 오히려 아이의 독립을 막고 의존성을 굳힌다고 지적합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급할 때마다 아이 대신 먼저 해주고, 놀이를 정해주고, “이렇게 해야지” 하며 개입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 조급함이 아이의 자신감과 독립심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 이야기입니다.
정체성 차압,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어른들
“정체성 차압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조선미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거나 만들지 않고, 부모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현상을 “정체성 차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차압이란 법률 용어로 채무자의 재산을 강제로 압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맥락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대신 결정해주면서 자녀가 스스로 자아를 찾을 기회를 빼앗긴 상태를 뜻합니다. 옛날에는 사춘기를 거치며 부모와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정체성 혼란”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20대 청년들조차 부모가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에까지 관여하는 건 예전부터 있었지만, 문제는 자녀들이 그것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모님 말씀대로 하니까 나쁘지 않더라”는 식으로 자기 삶의 중요한 선택을 부모에게 맡기는 거죠. 이렇게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권태롭고 지루하며 건조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되는 겁니다. 출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도 청소년기 자아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선미 교수는 이런 상태를 치유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내가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지”가 아니라 “누가 나를 해줘야 해”라는 자기 중심적 의존성이 굳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이런 자녀를 둔 부모나 형제를 상담할 때, 본인은 자기 힘으로 살아보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매우 더딥니다. 그래서 교수는 이런 경우 무조건 편의점이라도 가서 하루 세 시간씩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 아무리 작아도 그 경험이 책임감을 만들고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겁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 어디까지가 적절한가
그렇다면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에게 어디까지 도움을 줘야 할까요? 조선미 교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집 정도의 큰 돈은 도와줄 수 있지만, 생활비는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 생활비를 주기적으로 일정 액수 보태주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자녀는 자기 월급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집니다. 이것은 종속 관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며, 내가 내 가족을 나 혼자 힘으로 꾸려본 경험 자체가 없어지는 겁니다. ROE(자기자본이익률)라는 개념이 있는데, 기업이 주주의 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인 자녀도 자신의 자원(월급, 시간, 노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사는지 스스로 경험해봐야 합니다.
더 충격적인 건 빚에 대한 태도입니다. 교수는 “빚은 절대 갚아주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보통 빚을 지는 건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는 의미인데, 새로운 일은 쉽게 성공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돈을 대주면 자녀는 그걸 쉽게 해결하려 하고, 실패해도 좌절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는 이 정도 돈 굴려본 사람”이라며 다음 사업을 더 크게 벌이고, 결국 꼼수를 쓰거나 더 큰 빚을 지게 됩니다. 차라리 학자금은 부모가 내주되, 차는 사주지 말라고 합니다. 차는 자녀가 스스로 벌어서 사야 하는 항목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제대 후 부모님께 돈 달라는 소리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돈이 없던 열흘 동안 오렌지 주스 2L 페트병 하나로 점심 반, 저녁 반을 때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제 독립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미 교수 말처럼, 고생이 곧 고통은 아닙니다. 중학생들이 겨울에 반바지 입어도 춥지만 괴롭지 않듯이, 젊을 때의 고생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출처: 통계청의 청년 경제활동 조사에서도 20대 초반의 경제적 자립 경험이 이후 삶의 만족도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났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독립을 돕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성인이 되면 생활비 지원을 점차 줄이고, 자녀가 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경제적 독립을 격려한다
- 큰 결정(집 마련 등)에는 조언할 수 있지만, 일상적 선택과 실패는 자녀가 스스로 책임지게 한다
- 자녀의 하소연을 들어줄 때도 시간을 정해두고(심각한 건 1시간, 일상적인 건 20분), 부모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명확히 한다
할머니 육아와 엄마의 권위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손주 육아입니다. 요즘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할머니가 손주를 키우는 경우가 흔한데, 조선미 교수는 “안 하시는 게 좋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수많은 의사 결정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인데, 할머니가 주 양육자가 되면 그 결정권이 엄마한테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 앞에서 엄마가 할머니한테 혼나고, 엄마는 권위를 세우지 못하고, 할머니와 엄마 사이 서열이 생기면서 아이는 엄마를 “이모나 4촌 언니” 정도로 느끼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할머니가 어느 시점에 그만두거나 안 계시게 되면 아이는 주 보호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불안정하게 자라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급하게 외출해야 할 때 아이가 스스로 신발을 신으려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제가 먼저 신겨준 적이 많았습니다. 아이와 놀 때도 아이는 같은 놀이를 반복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이것도 해보자, 저것도 해보자” 하며 놀이를 정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방식대로 하다가 제가 생각한 순서에서 벗어나면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하며 개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는 “해줘”라고 하거나 “나 못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랑해서 도와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 조급함이 아이의 자신감과 독립심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미 교수는 엄마가 주 양육자로서 “키”를 꽉 잡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겨울 옷이 몇 개 있는지, 손톱을 깎았는지 안 깎았는지, 머리 자를 때가 됐는지 등 디테일을 다 알아야 엄마라는 겁니다. 그걸 직접 해준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가까이에서 살피고 있어야 아이가 “이 사람이 나를 제일 잘 아는 엄마구나”라고 느낀다는 것이죠.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걸 돌봐주는 사람을 아이는 양육자로 인식합니다. 만약 일하는 엄마라서 할머니께 도움을 받더라도, 중요한 결정은 엄마가 내리고, 할머니는 보조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결국 부모의 과한 개입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이를 약하게 만들고 의존성을 키운다는 사실을 이번 영상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고, 결정을 대신해주고, 실패의 책임까지 막아주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의존을 굳히는 방식입니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롭고, 한 번만 더 도와주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반복되면 자녀는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힘을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경쟁이 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모는 더 불안해지고, 그 불안이 개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건 아이를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견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다 도와주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라는 말이 이번에는 유난히 오래 남습니다.
참고
어린 시절 미숙한 행동을 성인이 되어서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ㅣ지식인초대석 EP.104 (조선미 교수 2부)